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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한 기부와 그 너머의 사랑 | 2026-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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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내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으면 꼭 한 마디를 던지고 간다. “또, 또 무서운 거 보네!” 내가 ‘그것이 알고 싶다’나 ‘용감한 형사들’과 같은 범죄 추적 프로그램을 즐겨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두운 구석과 누가 봐도 악한 범죄자들의 실태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거대한 의문이 마음을 짓누르곤 한다. ‘정말 하느님께서 저런 사람들도 만드셨을까? 대체 왜?’ 아무리 인간이 하느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수 없다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남겨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걸까. 신의 뜻이라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 맞으신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마저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범죄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하곤 한다. 물론 행복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불행한 과거가 그들의 죄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겠으나, 만약 그들에게도 사랑이 가득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의 손길을 건네주었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부터도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인지라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다. 차가운 내 성격을 좀 바꿔보고 이력서에도 한 줄 채우고자 해외로 봉사활동도 가보았지만, 현장에서 봉사하며 느낀 것은 내가 사람을 직접 대하고 마음을 쏟는 일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돈’으로 마음을 전하는 길을 택했다. 어마어마한 액수를 기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부모가 된 지금도 여전히 해외 아동 결연을 통해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기부가 나에게 자랑스럽기보다는 늘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내 몸과 마음을 직접 바쳐 봉사하는 이들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을 택한 내 모습이 얼마나 비겁하고 초라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멀찍이서 작은 마음을 보태고 TV를 보며 한숨을 쉬는 것밖에 못 하는 나이지만, 그 무거운 화면 속에는 지독한 악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부터, 그들이 죄를 뉘우치고 다시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품어주고 교육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타인에게 거리를 두는 나와 달리, 그들은 가장 무겁고 힘든 현장에서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TV를 보면 나부터도 범죄자를 비난하게 되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결국 하나다.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며, 피해자는 그 용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런 마음에는 사랑이 바탕이 됨을, 사랑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계심을,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알게 된다. 너무나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이 차츰 아물어 가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사랑이 넘쳐흘러 내 곁의 이웃들에게도 그 따뜻한 온기가 온전히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글 _ 마예은 엘리사벳(웹툰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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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 2026-10-14 오전 9:12:17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