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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글라렛 선교 수도회 수제맥주 공방 ‘홉플로우’ 2026-08-18

전남광주 나주시 남평읍.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푸른 숲길이 펼쳐진다. 많은 이가 고요한 묵상과 기도를 위해 찾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 남평 수도원이 자리한 곳이다. 평화롭고 한적하기만 할 것 같은 수도원 옆에는 의외의 공간이 들어서 있다. 국내 최초의 수도원 맥주 공방 ‘홉플로우’다. 그리고 그곳엔 맥주로 사람과 공간을 잇는 곽민재(율리아) 대표가 있다.


수도원에서 웬 맥주냐고요?

가톨릭과 맥주는 서로 밀접한 역사가 있다.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맥주를 빚어 왔다. 곡물로 만든 맥주는 수도원을 찾은 순례자와 여행객을 맞이하는 환대의 수단이었으며, 사순 시기에는 식사를 절제하는 수도자들의 열량을 보충하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유럽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곽 대표가 이러한 수도원 맥주 문화를 국내에서 시도해 보기로 한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대학원에서 도시·지역개발 공부를 마치고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코로나19로 해외를 나갈 수 없게 됐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무렵, 대학생 시절부터 연을 이어 온 수도원에서 피정객이 끊겨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때 수도원 신부님이 취미로 맥주 키트를 이용해 맥주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모습을 봤어요. 대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독일에서 수도원 맥주를 접했는데, 그 기억이 떠오르며 ‘이거다!’ 하게 됐죠.”

그때부터 한국맥주교육원에서 양조 교육을 받고, 전국의 브루어리를 탐방하며 사업 모델을 연구했다.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는 등 오랜 준비 끝에 3년 전 홉플로우를 창업했다. 홉플로우는 맥주의 주재료인 ‘홉(hop)’과 영어 단어 ‘플로우(flow·흐르다)’를 결합한 말로, 맥주를 통해 재미와 낭만이 흐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곽 대표의 포부가 담겨 있다.

곽 대표는 맥주 양조 체험과 수도원 투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도 수도원 방식에서 착안한 맥주는 앞서 출시된 적이 있지만, 수도원과 연계해 누구나 직접 양조를 경험하도록 만든 ‘수도원 맥주 공방’은 홉플로우가 처음이다.

누가 봐도 수도원 맥주 같죠?

홉플로우의 맥주는 벨기에 수도원 양조 전통에서 착안한 ‘벨지안 블론드, 두벨, 화이트, 다크스트롱’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에는 국산 사과를 이용해 만든 논알코올 음료 ‘루멘 애플 화이트’도 출시해 보다 많은 사람이 홉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창업에 영감을 준 수도원 피정관장 김인환(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와 함께 시음과 레시피 수정을 수없이 반복한 결과물이다.

맥주의 이름은 라틴어로 빛을 뜻하는 ‘루멘(lumen)’으로 지었다. “빛은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의미하면서, 또 누구에게나 희망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홉플로우를 찾고, 루멘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빛의 따뜻한 이미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맥주 캔과 병에는 루멘과 함께 글라렛 선교 수도회를 상징하는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령의 불을 세상에 전한다는 수도회의 선교 영성을 담은 문양이다. 루멘의 전용 잔은 성작을 본떠 만들었다. 5℃ 이하의 찬 음료를 담으면 흰 문양이 붉게 물든다.


유럽 수도원 맥주에 착안해 3년 전 창업…전문 교육·연구 끝에 맥주 ‘루멘’ 제작

수제 맥주 애호가·비신자 발걸음 이어져…새로운 문화·지역 성장 구심점 되고파

곽 대표는 누가 보더라도 가톨릭 수도원에서 나온 맥주임을 느낄 수 있도록 제품 곳곳에 수도원의 색깔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맥주만이 아니다. 맥주를 매개로 신자와 비신자 모두가 가톨릭과 수도원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기를 바란다.

“신자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대놓고 ‘우리 가톨릭이야’라고 하기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가톨릭의 한 역사와 문화였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거죠.”

실제로 홉플로우에는 피정 온 신자뿐 아니라 수제 맥주 애호가와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이들이 찾아온다. 곽 대표는 한 일화를 들려줬다. 그가 공방을 비운 어느 날, 수도원을 찾은 한 방문객이 수도원 한편의 무인카페를 둘러본 뒤 ‘나만의 숨어 있는 아지트를 찾은 것 같다. 충분히 환대받은 느낌이 든다’는 글을 남겼다.

“공간 자체의 분위기와 풍경이 사람을 환대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공방이, 또 제가 만드는 맥주가 하나의 선교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내가 환영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요.”

맥주로 수도원과 지역을 잇다

하지만 수도원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고민도 안겼다.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가톨릭이나 수도원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됐어요. 그때 신부님이 ‘민재야, 뭐가 문제니. 수도원이 뒤에 있잖아’라고 해 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됐죠.”

곽 대표는 김 신부의 든든한 응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원을 출발해 남평 강변 일대를 달린 뒤 참가자들과 음료와 피자를 나누며 교류하는 ‘수도원 러닝’을 실시했다. 자연 풍경에 건강한 신체 활동과 미식을 결합해 수도원과 나주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한 시도다. 또 전남관광재단의 ‘2026 관광기업 육성 및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수도원 성당에 미디어 파사드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양조 교육부터 러닝,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까지 바쁜 나날이지만 곽 대표의 구상은 멈추지 않는다. 맥주를 매개로 수도원과 지역을 잇고, 홉플로우를 사람들이 나주를 찾는 이유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나주에는 홉플로우가 있다는 걸 각인시키고 싶어요. 우리 지역에서도 먹고살고, 배우고,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가톨릭신문 2026-08-18 오후 5:32:1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