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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교에서 증거자의 시대로…「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 펴낸 류한영 신부 2026-07-14

“저는 조선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7월 한 달 동안만 같은 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언제나 시골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것을 빼고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5천 리를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이처럼 긴 여행과 이 모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늘 좋았습니다.”(최양업 신부가 도앙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50년 10월 1일자 편지)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이자 12년 동안 조선 각지를 누비며 신앙을 전한 ‘땀의 순교자’.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업적은 명성에 비해 신자들에게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류한영 신부(베드로·청주교구 성사전담)가 펴낸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는 최 신부의 생애와 영성을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 대중서다. 그는 “사람들이 신부님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름 석 자 정도만 아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알기 쉽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출간 계기를 설명했다.

책은 최양업 신부가 스승 선교사들에게 보낸 서한과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유학과 사제서품, 거듭된 조선 입국 시도, 귀국 후 교우촌 사목과 선종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가계도와 연표, 유학로와 조선 입국로, 교우촌 분포도 등을 수록해 그의 생애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교우촌을 찾아다닌 사제의 모습뿐 아니라 통번역가와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비춘다. 부제품을 받고 홍콩에 머물던 최 신부는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가운데 기해박해 순교자 73위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 자료는 교황청에 전해져 훗날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에 밑거름이 됐다. 한글 교리서와 「천주가사」를 보급하고, 신분과 성별을 넘어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대한 모습도 담겼다.

류 신부는 1998년 최양업 신부의 서한을 신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시작으로 26년 넘게 그의 삶을 살펴왔다. 1999년 청주교구 배티 순교 성지에 부임해 양업교회사연구소 관장 등을 지냈고,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로 시복시성 추진 실무를 맡았다.

그는 배티 순교 성지에 부임한 뒤 어느 날 성지 경당에서 “제가 최양업 신부님의 유업을 잘 잇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이어야 할 유업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류 신부는 “신부님은 홍콩에서 순교자들의 행적을 번역해 교황청에 전했다”며 “주교회의에서 시복시성 업무를 시작한 뒤 신부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부님의 보이지 않는 이끄심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 추진 과정과 전망을 담았다. 류 신부는 실무자로서 경험한 성덕 심사와 2016년 가경자 선포 과정을 설명하고, 올해 3월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보고된 치유 사례가 교황청 시성부 의학자문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의미도 전한다.

류 신부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기초를 순교자들이 쌓았다면, 이제 그다음에는 평생 복음을 실천한 이들의 성덕을 발견하는 ‘증거자의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 문을 열 첫 인물이 최양업 신부님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가톨릭신문 2026-07-14 오전 9:12:1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