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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죽음이 서린 람페두사 방문한 교황, 침묵의 기도로 큰 울림 전해 2026-07-08
레오 14세 교황이 4일 이탈리아 람페두사 파발로로 부두에서 항구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름을 봉헌해 ‘프란치스코 교황 부두’로 명명하는 내용을 담은 기념비를 축복하고 있다. OSV


레오 14세 교황은 4일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관문인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을 사목 방문하고 이주민을 향한 ‘무관심의 세계화’가 확산하는 세태에 다시금 경종을 울렸다. 교황이 람페두사섬을 방문한 것은 201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두 번째로, 13년 만이다.

교황은 이번 방문을 무명 이주민들의 비극에 함께하는 사도좌 순례로 여기고 ‘침묵의 기도’를 바쳤다. 교황은 첫 일정으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칼라 피사나(Cala Pisana) 묘지를 찾아 난파선 나무 조각으로 만든 십자가가 세워진 무덤 위에 헌화했다. 2020년 난민선 난파 사고로 목숨을 잃은 생후 6개월 된 아기 유수프(Yusuf)의 사진 앞에서도 별도의 메시지보다 희망을 찾아 국경을 넘고자 했던 이들을 침묵 속에 기억하며 묵상했다.

교황은 푼타 델 카발로 비앙코(Punta del Cavallo Bianco)로 이동해 람페두사의 대표 상징물인 ‘유럽의 문(Gateway to Europe)’을 찾았다. 유럽의 문은 도착과 경계, 죽음과 생명, 구원의 의미를 담아 2008년 세워진 기념비다. 이날 교황의 ‘유럽의 문’ 방문에는 코트디부아르 출신 이주민 가족도 함께했다. 이 가운데 2021년생 마리아 에마누엘라양은 51년 만에 처음 이 섬에서 태어난 이주민의 아이였다. 교황은 함께한 아이들을 안아주며 그들을 응원했다.

이어 교황은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의 상륙 장소인 파발로로 부두(Molo Favaloro)에 세워진 기념비를 축복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람페두사 방문을 기념해 만들어진 비석이다. 이탈리아의 한 업체가 람페두사의 하얀 해변을 본떠 만든 이 기념비는 항구를 ‘프란치스코 교황 부두(Molo Papa Francesco)’로 명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레오 14세 교황이 4일 이탈리아 람페두사 사목 방문 중 현지 주민들의 환영에 화답하며 주민들에게 축복을 전하고 있다. OSV
 
레오 14세 교황이 4일 이탈리아 람페두사의 야외 스포츠 경기장에서 봉헌한 미사 중 강론하고 있다. OSV



교황은 이어 인근 야외 경기장에서 현지 주민과 이주민 등 6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주례한 미사에서 “이곳에 온 이유는 수만 명의 이주민이 해안에 상륙했을 때 보여준 주민들과 봉사자들의 연대와 사랑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라며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형제·자매를 알아본 자비심이 이 땅에 사랑의 싹을 틔웠다”고 격려했다. 이어 “람페두사를 찾아온 이주민과 주민들 역시 가난한 이들이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돕는 모범을 보여줬다”며 “여러분이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며,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교황은 “사랑의 문명이 진정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따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며 “우리는 사랑의 문명을 영적·문화적·법적·정치적·경제적으로 구현해내야 하는 소명을 갖고 있다”고 당부했다.

외신들은 교황의 람페두사 방문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 이뤄진 점에 주목하며 “교황이 서구 사회에 퍼진 이주민 혐오와 무관심 세태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교황의 람페두사 방문은 대규모 이주민 단속과 추방 정책을 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과 대비된다”며 “냉소와 증오 대신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강조한 메시지는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미국 독립기념일 당일에 축하 대신 난민들의 묘지를 찾은 것 자체에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지중해에서 숨진 이들이 사회 시스템의 배제와 편견의 희생자임을 강조한 교황의 발언은 국경 단속에만 치중하는 일부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라고 분석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6-07-08 오전 7:52:06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