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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 첫 수덕자'' 홍유한 선생의 복음적 삶, 심포지엄에서 재조명 | 2026-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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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의 제자로 「천주실의」와 「칠극」 등 한역 서학서를 접한 홍유한은 일찍이 과거를 단념, 1760년 한양에서 충청도 예산으로 간 데 이어 1775년 경상도 순흥(영주)으로 옮겨 교리서에 따른 수계생활로 삶을 마무리했다. 현재 안동교구 우곡성지에는 홍유한의 묘와 함께 그의 후손인 풍산홍씨 순교자 13위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조 신부는 또 “화세(火洗)를 받았다는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 외에 홍유한이 직접 천주교 신앙을 통해 수계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재종질(육촌형제의 아들)이자 제자인 복자 홍낙민(루카) 등이 남긴 제문(祭文)에 나타나는 그의 삶은 단순히 유교적 덕행의 삶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인 그리스도교적 애덕과 겸손을 보여준다”며 “이후 풍산홍씨 가문에서 생겨난 홍낙민 등 13위 순교자들의 뿌리에는 홍유한과 같은 선조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동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대원 신부도 홍유한을 한국 신앙 공동체 탄생의 마중물 역할을 한 ‘요한 세례자’와 같은 인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홍유한의 순흥 이주를 두고 애초 목표였던 ‘학문 공동체’ 구상을 전면 수정한, 서학서에서 깨달은 진리를 실천하는 ‘수덕 공동체’ 건설을 위한 결행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같은 삶의 형태가 1776년 그를 방문한 권철신(암브로시오) 등에게 영향을 줘 마침내 한국 교회 창립으로 이어졌다고 풀이했다.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성태 신부는 홍낙민 복자가 스승 홍유한의 가르침을 통해 형성된 사상적 기반으로 신앙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초기 교회 핵심 지도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를 통해 홍유한으로부터 이어진 풍산홍씨 가문의 공동체적 신앙 유산이 훌륭한 열매를 맺었다고 역설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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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평화신문 2026-06-10 오전 9:52:34 일 발행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