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그린 예수님
<유리를 말하다>
소통과 단절이라는 유리의 상반된 속성을 생각해 본다.
건축의 재료인 유리는 공간을 구분 짓는 차단의 기능이 있다.
대상에는 물과 소리, 공기와 바이러스까지 포함된다.
반면, 빛을 투과해 사물의 형태를 드러내는 소통의 역할도 한다.
미술의 재료인 유리는 대체 불가의 존재감도 있다.
상온에서 과냉각된 무게감과 영롱함의 결정체.
인간이 만들었으나 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오브제.
철과 시멘트, 목재 등의 건축재와도 잘 어울린다.
나는 그것들을 다듬고 재배치하면서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한다.
반면, 파열이라는 돌발 상황 때문에
주위를 환기하게 만드는 소재이기도 하다.
유리는 한순간의 물리적 충격에 돌이킬 수 없는 파열에 이른다.
자비는 없다.
파열 뒤에 숨겨진 칼날보다 예리한 섬광까지 생각하면
불길한 상상과 작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유리는 인생을 닮았다.
소통과 단절과 파열이 뒤섞인 인생의 모습.
유리를 말하며 인생을 논하는 지금,
소통과 단절과 파열의 속성은 작금의 상황과 더욱 비교된다.
맨눈으로 볼 수도 없는 작은 바이러스 따위에 속수무책인 우리.
그 미세한 힘으로 아주 거대한 단절을 맛보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배려해야 하는 작은 것들을 홀대한 결과는 아닌지.
세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분을 잊고
행여 우리가 자초한 파멸의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리 앞에서는 티끌조차 숨길 수 없다.
주님 앞에 민낯일 수밖에 없는 내 모습.
늘 나를 찾아 헤매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다시 나를 본다.
답이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음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