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公所),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
- 강재문 개인전 ‘공소참견(公所參見)’ 서문 -
공소(公所)의 사전적 의미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의 단위교회. 주임신부가 상주하...더보기
강재문 사진전
공소(公所),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
- 강재문 개인전 ‘공소참견(公所參見)’ 서문 -
공소(公所)의 사전적 의미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의 단위교회.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신자들의 모임’이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은 ‘작은 성당’인 공소이었다. 한국천주교회 200년의 반 이상이 공소시대였으므로 천주교회의 모태가 바로 공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소 신자 수 · 공소전례 · 공소 사목활동 · 공소 재정 등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공소는 옛날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소(公所)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에 저항하며 유일하게 신분을 넘어선 평등의 공간이라는 점과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과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신(神)을 향한 믿음을 공동체적으로 실천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도들이 고난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깊은 사랑을 싹트게 하는 시간들이 숨 쉬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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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문은 공소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적 신앙 공동체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재문의 눈에 비친 공소의 다양한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처음부터 지금 현재까지 공소는 언제나 소외받는 자들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신과 인간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순수한 공간으로서 공소의 진실을 목격한 것이다. 예수는 ‘내가 침묵하듯이 그대도 침묵하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그 진실이 공소(公所), 바로 그 작은 성당에서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진실은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침묵과 사랑의 빛이었음을…….
그것을 깨달은 후, 강재문은 공소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주장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공소 사진을 통해 신과 인간의 침묵 속에서 하나이기를, 사랑이기를 열망한 진실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제 그에게 공소는 외양적으로 왜소하고 누추하지만 영원한 침묵이 흐르는 신성한 곳이다. 인간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 불현 듯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언어도 논리도 말도 상실한 채 찾아들 수 밖에 없는 곳, 말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인간의 상처와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침묵 속에서 사랑의 빛인 은총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시·공간이 사라진 영원한 장소인 것이다. 아마도 작은 방석에 앉은 인간은 침묵 속에서 신과 접촉하고, 구원받으며 신(神)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 사진집단 지평, 노 정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