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섭 다미아노!
작가와 처음 만남에서 접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뭐지?’
어설프게 항복하면 반항의 기질이 남는...더보기
오광섭 성미술전
오광섭 다미아노!
작가와 처음 만남에서 접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뭐지?’
어설프게 항복하면 반항의 기질이 남는 법인데, 그 남은 찌꺼기마저 쇳물 녹듯 녹아버리면 하느님께서는 비로소 완전히 당신 작업을 이루신다.
주님은 왜 그렇게 철저히 녹여서 쓰시려 하셨을까?
다미아노 작가의 비구상 작품들을 접하면 그가 얼마나 고집불통이고 타협을 모르는 기질을 가졌는지 철저하게 볼 수 있다. 양보란 있을 수 없다는, 작가 자신만의 세계를 뿜어내는 작품 앞에서 나는 ‘어이구 세상에’라고 외마디를 흘렸던 기억이 있다.
조각가로서 걸어야 할 길을 타협 없이 정진한 세월은 아직도 계속된다.
하지만 하느님의 성전에서 신자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작품에는 주님을 드러내는 사실적인 구상만 있을 뿐, 오광섭은 그 안에 완전히 녹아 없다. 어딜 봐도 그는 없다. 아니 주님 안에 녹아 있다. 어떻게 한 작가의 비구상과 구상이 이렇게 다른 느낌일 수 있는지....
해서 나는 작가로서의 오광섭 그를 존중한다. 그의 고집스런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다미아노는 존경한다. 하느님께서 이 영혼을 껴안고 녹이셨고, 그는 하느님이 주신 재능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에 일치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전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이 오광섭 다미아노 작가의 작품으로 아름답게 드러나 전해지는 자리가 되길 바라고 축복하게 된다.
2019년 가을
화양동에서 한영석 라우렌시오 신부